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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5 인터뷰

서울 리터러시 - 강홍구 작가

2024.07.25

디지털 사진 1세대 작가인 강홍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미지의 변화무쌍함을 다뤄왔다. 현장 촬영, 디지털 사진과 광고 및 영화 스틸의 합성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사진과 회화를 결합하는 것이 그의 영역이다. “사진은 내가 못 본 것을 증거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카메라가 포착한 것을 넘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전시 〈서울 :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8월 4일까지 전시)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과 은평뉴타운 재개발 지역에 대한 기록이 빼곡하다. 자꾸 눈길이 가는 공간, 혹은 ‘여기에 있었던가?’ 새롭게 발견한 공간까지 우리의 상상과 관찰을 자극하는 사진들은 삶의 터전이었고, 붐비는 서울에서 텅 비어 있는 이질적인 공간을 눈에 담는다. 전시를 보고 나면 우리 자신에게 서울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하게 될 것이다.


글. 황소연 | 사진. 김주희

오랜 시간 그린벨트와 재개발 공간에 대한 키워드로 전시가 진행되어왔습니다. 〈서울: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 전시가 갖는 차이, 장점은 무엇인지요?

이 전시는 서울에 대한 제 작업을 모아서 열게 됐어요. 몇 년 전에 디지털 파일들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기증했어요. 기증의 대상은 서울의 불광동 재개발 지역, 은평뉴타운 재개발 지역을 촬영한 디지털 파일입니다. 21,000장 조금 넘는데요. 그것이 계기가 돼서 제가 서울에 대해서 어떤 작업을 했나 살펴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작업이 많았어요. 서울에 대한 작업을 한다고 의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많더라고요. 언젠가 한번 모아서 내가 서울을 어떻게 봤나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전시 제안을 주었어요.

지난해에는 〈무인도와 유인도신안바다〉를 통해 고향의 역사, 풍경을 담아내셨습니다. 작업과 이번 서울 작업에 임하는 마음은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서울의 무엇을 찍었나를 봤더니 재개발 지역, 한강시민공원 같은 서울의 놀이 공간이었고 또 하나는 서울의 녹색이 남아 있는 지역이었어요. 서울 내부에 아주 강력하게 존재하는 자본과 권력 등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죠. 신안은 제 고향인데, 처음에는 일종의 낯섦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신안군을 오랜만에 방문하면 ‘이곳이 내가 알던 그곳인가.’ 싶었거든요. 그게 ‘익숙한 낯섦’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촬영을 해봐야겠더라고요. 또 신안군이 굉장히 넓어요. 섬들까지 합하면 신안군 전체 면적이 서울의 한 22배쯤 돼요. 되도록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는데 사람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신안의 풍경과 삶의 모습을 찍었기 때문에 서울과는 접근하는 태도 혹은 감정, 시선은 조금 달랐죠.

은평구 일대 사진을 찍을 때는 그저 찍어두자, 농촌과 도시 사이 접점과 변이를 추적하자.” 의도였다고 하셨어요. 재개발 상황 이후엔 다른 맥락이 생겼고요. 이러한 맥락을 작가로서 받아들이고 수용한 고민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2001년에 불광동으로 이사했어요. 그 근처에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놀랍게 무심했어요. 그걸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후로 은평뉴타운 개발이 시작됐죠. 재개발 아파트로 한몫 잡겠다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어요. 예를 들어 당시 대표적인 광고 카피 중 하나가 “부자되세요”였어요. 촬영을 하다 나중에 전시할 무렵이 되니, 사진의 맥락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는 처음에 이것을 하나의 기록으로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물건을 재개발 현장에 갖다 놓고 찍고, 여러 장을 붙여서 만들기도 하고 했는데 막상 전시하려고 보니 일종의 기록성이 강해진 거죠.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얘기를 사진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후 아카이브에 기증하면서 사진을 다시 정리해보니, 10년간 안 보다가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사진은 그대로지만 시각이 변화했다는 걸 알았죠.

어떤 감정이 우선했습니까?

처음에는 놀라움이었어요. 내가 이걸 찍었었나 싶었죠. 촬영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많은 장면이 찍혀 있더라고요. 특히 재개발 지역을 찍으면서 전체 풍경, 집 하나하나도 찍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공간이 어떻게 사라져가고 망가지는지 안팎을 다 찍은 그런 기록이 남아서 괜찮구나 싶었어요.

요즘엔 어떤 공간을 산책, 구경하고 계신가요?

지금 저는 고양시 원흥동이라는 곳에 사는데, 그 앞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됐어요. 그래서 바로 앞이 논밭인데 2027년에 입주를 목표로 1차 재개발을 하고 있어요. 재개발 현장을 너무 많이 찍어서 그만할까 했는데,(웃음) 내가 기록 안 하면 또 누가 할까 싶어서 그 앞을 기록하는 중입니다. 또 제 작업실에 있던 곳이 불광 5구역이에요. 거기서 한 17년 살다가 이사를 했는데 그곳도 재개발이 본격 시작돼서 안 찍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어쩌면 불광동 재개발 지역 시리즈의 완결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후속작을 찍는다면 촬영한 사진을 동사로 묶어보고 싶어요. 먹다, 걷다, 가다처럼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는 거죠. 아직 시험 단계에요.

가족의 순간이 담긴 앨범을 버리고 충격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사람들이 떠나가고 난 집들을 돌아다니면 많은 물건이 버려져 있어요. 오래된 장롱, 자개장, 낡은 이불, 텔레비전부터 작은 장난감까지 다양하죠. 사진첩은 충격이었어요. 어떤 집은 집안이 파탄 났나 싶을 정도로 성혼 선언문부터 결혼식 과정, 애 낳고 키운 성장 과정이 담긴 앨범까지도 버리고 갔더라고요. 3대 가족 앨범도 있었고요. 그걸 버린 게 실수는 아닌 것 같아요. 기억을 버리는 거잖아요.

지금의 서울은 작가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지금의 서울은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장소예요. 우선 전시를 여기서 하고 있잖아요. 거주는 경기도에서 하지만 주로 활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작품을 전시하는 데는 서울이에요. 여러 인풋, 전시를 보고 영화를 보는 곳도 서울이죠. 서울이 삶의 중심인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서울의 무서운 힘이 있어요. 경제적인 힘, 정치적 영향까지 독점하죠.

〈미키네 집〉, 〈수련자〉 장난감 집과 가즈야 인형이 맥거핀과 같은 역할이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집이나 인형에 담긴 서사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완결된 세계가 아니라 확장 가능성 있는 세계라고 하신 것도 떠오르고요.

〈미키네 집〉은 노란색 벽에 분홍색 지붕, 가운데에 미키마우스가 새겨져 있어요. 누군가 버리고 간 ‘집’이죠. 그런 종류의 2층 양옥집은 저희 세대에겐 일종의 로망이에요. 동화책에서 보던, 그런 집을 버리고 떠났다는 게 굉장히 흥미 있었어요. 재개발 지역에 배치해 찍으니 재미있었고요. 〈수련자〉 시리즈 경우에도, 처음엔 무슨 인형인지 몰랐어요. 알고 보니 게임 캐릭터였던 거죠. 어렸을 때 읽었던 중국 무협 소설에 나오는 초식과 결합하니 재밌었어요. 재개발의 풍경을 같이 보게끔 하나의 장치를 해두고 싶었어요.

따로 서사를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건 관람객들이 느끼는 거고, 전체 작업을 모아놨을 때 개인이 서울과 어떻게 마주쳤는지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미술 작품들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세계에 대한 답이 아니고, 다른 세계를 난 이렇게 봤고, 내가 본 것은 이런데 당신은 어떤지 묻는 거니까요. 여러 가지 맥락에서 물어보는 거라서 그에 대한 답은 보면서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죠.

가장 최근 시각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콘텐츠가 궁금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몇 년간 본 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색감도 그렇고 사운드도 그렇고요. 영화라는 매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감독이 아주 절묘하게 조절했고, 심미적이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정말 가슴을 찌르는 데가 있었어요.

재개발구역을 촬영하면서 공간과 사이에 거리를 어떻게 것인지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리를 두되 관광객은 아닌 위치에서 촬영하셨다고 했는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그게 어려워요. 거기에 살고 있었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너무 멀면 완전히 구경거리처럼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우면 힘들어져요.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끔 해야 했어요. 그 거리감에 대한 특별한 원칙을 만들긴 어려워요.

전통적 의미의 미술은 저물어가는 장르라고 말씀하신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정말 많은 이미지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시대입니다. AI 이미지를 만들고 편집하는 것이 너무 쉽고 자연스럽고요. 사진은 세계의 파편이라고도 하셨지요.

AI에게 언어로 명령해서 만드는 이미지가 사실 그렇게 대단치 않아요. 그럼에도 교황이 흰색 패딩을 입고 찍힌 사진 같은 건 실제와 구별이 안 가죠. 사진은 과학적이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일 거라는 일종의 믿음 위에서 성립되는데, 이제는 AI 기술 수준이 높아졌고, 그 합성물이 완전히 사진의 맥락으로 통용돼요.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일단 모든 사진들을 다 의심해봐야 하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원래 사진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게 없어요. 진짜로 촬영됐다고 믿지만 그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죠.

전시를 보는 관객들이 가졌으면 하는 질문이 있나요?

내가 지금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 이곳이 그럴 만한 가치나 보람이 있는 곳인지 질문하면 좋겠어요. 서울 내부에서 어떻게 움직이면서 사는지에 대해서요.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는 동안 전시를 몇 번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전시에 관한 버킷리스트 같은 걸 써보게 되더라고요. 고향인 신안에 대한 사진, 그리고 서울에 대한 사진을 묶어서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은 이뤘고, 미정이긴 하지만 이사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와 당시 상황을 결합해서 묶어볼까 싶어요. 이사를 몇 번 했는지 세어보니 서른다섯 번이나 되더라고요.

전시를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일단은 서울 시민들, 또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재개발과 그 업체에 종사하는 이들이나 건축업 종사자들이 봐도 좋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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