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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6 컬쳐

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 이상해도 괜찮은 괴짜 이야기│2024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미디 성장물

2024.08.22

뜨거운 여름을 기억하는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다. 바다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피서로, 이열치열을 즐기는 페스티벌로, 해가 긴 여름밤의 맥주로. 그중에서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씨네필들이 모여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장으로 유명하다. 제28회 BIFAN에서 불볕더위를 날려줄 유쾌하고 짜릿한 코미디를 만났다. ‘이상해도 괜찮아(Stay Strange)’라는 슬로건 아래, 얼핏 ‘괴짜’로 보일 법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이상함을 기꺼이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글. 황소연 | 스틸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달콤 살벌한 나의 인형, 〈미트 퍼펫(Meat Puppet)

곧 성인이 되는 한 소년이 벽에 걸린 졸업 가운을 바라보며 졸업식에 갈지 말지 고민한다. 심지어 본인 빼고 모두가 참여하는데 말이다. 왜 그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는 뒷전이고 액션 피규어에만 몰입하는 걸까? 이제 인형이나 피규어보다 좀 더 진지한 것들에 신경 쓰며 집 바깥세상에서 살기로 여자 친구와 약속했지만 작심삼일, 아니 작심오분. 여자 친구의 부탁은 머리를 잠깐 스쳐갈 뿐 키덜트 아이템이 주는 재미와 도파민이 주인공에겐 더 강렬하다.

영화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관객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작고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인형은 영화의 줄거리와 주인공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이 ‘퍼펫’ 덕분에, 주인공의 개인적 서사가 다소 요약되어 등장하더라도 관객은 인물의 전사와 성장을 짐작할 수 있다. 성장 드라마의 진지한 뉘앙스는 덜어내고, 고어한 분위기도 귀엽고 컬러풀하게 풀어냈다.

감독의 전작 〈굿 보이〉에서도 〈미트 퍼펫〉과 같은 ‘귀엽고 작은 존재’가 등장한다. 작은 강아지와 주인공의 합을 보여준 에로스 브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작은 인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미트 퍼펫은 사실 게임으로도 잘 알려진 단어다. 게임에선 낯설고 무서움을 자아내는 크리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영화 속 인형 역시 주인공이 사는 집 바깥세상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단정하지도 앙증맞지도 않지만, 그럴수록 빠져들기 마련인 ‘이상한 존재’의 매력을 그린다. 바깥과는 교류하지 않는 듯한 주인공의 곁에 있는 이웃, 여자 친구 덕분에 그는 위기에 처하는 동시에 혼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피규어에 푹 빠진 소년의 졸업식 이후가 기대되는, 짧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다.

런던 출신의 에로스 브이 감독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영화뿐만 아니라 광고, 패션 마케팅, 비주얼 아트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하는 중이다.

감독 | 에로스 브이

국가 | 영국

주연 | 데이비드 존슨(Oz 역)

다홍빛 청춘, 〈가라오케 가자!(Let's Go Karaoke!)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일본 청소년 성장물 속 소재, 동아리 활동. 말수 적은 주인공과 응원하는 친구들, 평범하고도 특이한 주변 어른들의 조화는 영화가 흘러갈수록 〈가라오케 가자!〉의 첫인상과는 다르게 ‘매운맛’을 남긴다. 와야마 야마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중학교 합창부를 이끄는 오카 사토미는 노래를 잘 알고 잘하는 조용한 소년이다. 합창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불안함, 그런 팀에 생기기 시작한 균열과 함께 한 남자가 사토미에게 찾아온다. 합창대회에서 우연히 사토미네 합창부의 노래를 듣게 된 나리타 쿄지는 무턱대고 사토미에게 자신의 노래 선생이 되어줄 것을 간청한다. 야쿠자인 그의 정체에 당혹스럽고 무서워할 틈도 없이, 쿄지는 가라오케에서 실력을 검증하는 노래를 부른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열리는 노래 대회에서 꼴찌만은 피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 이 대회에서 꼴찌가 되면 무시무시한 벌칙을 피할 수 없어서다. 그는 사토미의 성실한 제자가 된다. 이후 관객들은 출연자들이 가라오케로 노래를 부르는 여러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선곡의 버라이어티함도 웃음 포인트다.

음악밖에 모르는 청소년 같던 사토미는 일련의 이벤트를 겪으며 ‘어른의 계단’을 오른다. 변화하는 신체가 당황스러운 사토미의 일상 동선에 변화가 생기는 것. 종종 친구의 영화 동아리에 한눈을 팔러 가 흑백영화를 보면서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쿄지가 야쿠자 조직 노래 대회에서 벌칙을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골목에 발을 들이는 것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관문일까.

노래를 잘하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도 집중해야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잘 들으세요.”라는 사토미의 조언은 중요하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다. 어떤 노래든 잘 부를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가진 고유한 음색에 맞는 노래를 찾아주려는 사토미의 노력은 영화가 흘러갈수록 빛을 발한다.

영화는 노래방이라는 공간을 성장과 학습의 공간으로 보여주는 한편,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리는 음악의 힘과 청춘에 대해 말한다. 되감기가 되지 않는 영화 동아리의 흑백영화 비디오, 이미 흘러간 친구들과의 하모니, 노래방의 반주 곳곳에는 사토미와 친구들, 어쩌면 몸만 자란 어른들을 위한 환영 같은 청춘이 숨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X-japan의 노래 ‘쿠레나이(다홍)’의 가사는 그런 순간을 상징한다.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상영에 직접 오진 못했지만, 영상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노래방과 노래방 문화가 익숙할 것이기에, 잘 즐겨 달라는 말과 함께. 2005년 〈린다 린다 린다〉를 만든 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영화다.

감독 | 야마시타 노부히로

국가 | 일본

주연 | 아야노 고(나리타 쿄지 역), 사이토 쥰(오카 사토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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