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통역사, 케어러, 부모의 딸, 그리고 부모의 부모 ― 코다코리아 장현정 (1)'에서 이어집니다.
교우 관계는 어땠어요? 청인의 자녀인 친구들과 다름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어요?
친구들과 멀어지는 경험은 없었는데 부모님이 농인이라는 사실을 말하기까지가 고민이 많았죠. 또 학기 초마다 선생님께 부모님에 대해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오잖아요. 한번은 선생님이 교실 앞에 나와서 수화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이 친구의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니까 수어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 하면서 보여달라고 한 거죠. 저는 사람들 앞에서 수화하는 걸 안 좋아해요. 코다라고 수어를 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부모님이 농인인 건 부끄럽지 않은데 사회적 인식이 저를 그렇게 만들더라고요. 연민과 동정의 눈길을 받거나 뭔가 신기한 걸 본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부모님 건강은 어떠셨어요? 통역 외에 현정 씨의 돌봄이 필요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부모님은 계속 편찮으신 상태예요.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적이 있고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지만 병원은 계속 다니시고 있어요. 항상 휴대폰에 병원 스케줄이 있어요. 아빠가 병원에 가실 때마다 최대한 같이 가고, 정말 사정이 안 되면 통역사분을 동행하게 하죠. 병원 시간이 너무 일러서 통역사분이 동행하지 못하면 영상통화로 의사와 대화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에게는 터울이 큰 언니가 있어요. 제가 어릴 때는 모든 돌봄을 언니가 했고 언니가 스무 살,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 바통 터치가 돼서 (돌봄을) 거의 다 이어받았어요.
그래도 언니의 존재가 많이 의지되었겠네요.
언니가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또 언니가 책임감이 강하다 보니까 미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언니한테 계속 손을 벌리고 기댔어요.
언니와는 돌봄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 있어요?
진지한 분위기에서 하기보다는 은연중에 계속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쉽지 않구나, 그런 얘기를 해요. 21세기인데 아직도 우리가 통역을 다녀야 하냐,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영상으로 하면 안 되냐, 푸념을 늘어놓죠.
코다코리아에서 정책 제안을 한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우선 학교에 수화 통역사를 배치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영화 <코다>를 보면서도 학교 행사나 일이 있을 때 통역사가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았거든요. 현실적으로 교육청 단위로만 있어도 훨씬 나아지겠죠. 또 그 전에 농인에 대한 교육이나 환경이 개선되어야 자연스럽게 코다의 환경도 바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도 농인 교육 개선을 위해 농인 단체들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공론장이 생기고 농인 교육 환경이 개선되면 좋겠어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여쭤봤는데 코다로서의 장점은 뭔가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돼요. 코다코리아 슬로건도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다”거든요. 정말 농인 사회와 청인 사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코다예요. 그 정체성이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현정 님은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게 되기를 바라세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좀 멀어지고 싶은 것 같아요. 저는 돌봄을 계속해와서 돌봄을 하는 사람의 어려움과 고충을 잘 알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요청하기 더 어렵고요. 가족이라는 것에 얽혀 있기보다, 거리가 있는 느슨한 관계로서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꾸리고 싶어요. 그리고 어려움의 경중을 떠나서 어렵다고 하면 바로 도와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남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도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이 주어지면 좋겠어요.
아직 코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앞에서 코다로서의 고충을 많이 얘기했는데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코다를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르거나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회 구성원이에요. 최근 부모님과 여행을 갔는데 휴게소에서 밥을 먹었거든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어떤 분이 저희를 보더니 김밥을 주고 가더라고요. 안 받겠다고 했는데 정말 선한 얼굴로 웃으면서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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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스로를 “코다입니다”라고 하자 단어로부터 소속감이 생겼어요.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대학 친구들 중 어떤 커뮤니티 안에서도 코다라는 정체성 때문에 100% 소속됐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코다 모임에 들어가고는 공통적인 경험을 나누면서 가족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혼자 부딪혀왔던 사람들끼리 만나니까 편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돼요. 코다코리아 슬로건도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다”거든요. 정말 농인 사회와 청인 사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코다예요. 그 정체성이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글. 양수복
사진.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