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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4 에세이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할까 (2)

2023.03.07


이 글은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할까 (1)'에서 이어집니다.

재개발 현장의 고양이가 의미하는 것

빼곡히 자리 잡고 있던 가게와 집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건물 철거를 위해 공사 가림막으로 공간을 가려놨기 때문이다. 길만 건너면 삼성산이 있는데 그 가까이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21세기 대도시 서울에서 다시 못 볼 풍경이었다. 이젠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고양이들만 남았다. 어찌 된 일인지 재개발구역에 남아 있는 길고양이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도 경계하지 않는다. 나에겐 간식도 사료도 없는데 ‘야옹~’거리며 잘도 따라온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봐준 주민들이 있었다는 증거다. 영역 동물인 데다가 물과 먹이를 챙겨주는 캣맘이 있다 보니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것 같은데 걱정이다. 길 건너 삼성산 기슭 쪽 현장을 찾아갔을 때는, 열 마리도 더 되는 고양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분명 먹을 것을 챙겨주던 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해졌다. 근처 편의점에서 사료라도 사서 줬어야 했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재개발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동물과 인간을 이따금 생존의 문제로 밀어 넣는 것일까? 사람들조차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물의 생존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혼란스러웠다. 무기력 속에서도 재개발 안에서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논의를 하고, 해결책을 실행해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도시개발 과정은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주거권과 생존권 보장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재개발이 진행되면 기존과 다른 도시 조직이 만들어지고, 생태계의 구조도 달라진다.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될 것이다. 변화된 도시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달라지는 지점을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하는 각자의 도시이자, 지역이면서, 동네이고,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주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방향성을 결정하는 역할이 주어질 수도 있다.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경험에 대한 대비도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물리적 공간의 변화 속도만 언급될 뿐 인간이 적응해야 할 체계, 태도, 가치관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재개발조합은 주민들에게 재개발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갑자기 보상금 얼마 쥐어주면서 나가라고 했어요. 이 동네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 항의도 못 하고 그냥 나가게 되죠. 저 같은 경우는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뭐라도 해보려고요.”

재개발 대상지에 거주하고 있던 어느 작가님이 내게 들려준 말이다. 재개발 지역에서 대부분의 세입자는 기본적인 정보조차 전달받지 못한 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조합원이 아니면 재개발 진행 과정에 대해서 전혀 공유받지 못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 참여하기는커녕, 급하게 이사할 집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동네의 미래를 그려볼 수 없다. 아니 결정할 수가 없다. 참여 기회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동네의 미래는 특정 누군가 혹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도시계획의 어떤 그림에 속할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개발은 지속된다. 고령층이 거주하는 동네일수록 의견을 낼 기회는 드물다. 이러한 현실이 어쩌면 우리를 거리로 내모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이주 과정은 어땠을까? 몇 년 동안 재개발이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왔으니 상황을 몰랐던 이는 없었을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모두가 떠난 동네 한복판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글 | 사진.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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