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 (1)'에서 이어집니다.
우리가 자라지 않는 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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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어떻게 보면 그냥 생명을 잃는 것보다 살아 있는 채로 존재감이 사라지는 게 더 무서운 일이 아닐까. 성우라는 직업 안에서 볼 때 아기와 만나기 직전과 비할 바 없이 더 큰 두려움을 마주했던 시기가 있었다. 2년의 전속 성우 생활을 마치고 갓 프리랜서가 되었던 2013년. 내가 공채시험을 통과한 방송사는 대원방송이었다. 지금은 성우 지망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방송사로 꼽힌다는데 당시만 해도 자체적으로 성우를 선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합격하고 나서도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지금이라도 사표 쓰고 나와서 다른 방송국 시험 다시 봐.” 프리랜서가 될 즈음에는 “밖에서 너희들을 누가 써주겠어?”라는 악담과 “너희들은 곧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 아니 장담도 들은 적이 있다. 성우라는 직업 자체가 일정 기간 전속 생활 후 반강제 프리랜서 방출이라는 특이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불안에, 그런 악담과 장담이 더해지니 불안과 두려움은 꼭 내가 몰고 다니는 먹구름 같았다. 그때에도 나는 몸부림을 쳤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이름을 날리고 잘되기 위해 행하는 그런 고상한 연습이 아니었다.
자취방에서 홀로 녹음실 놀이를 했다. PC에 USB 마이크를 연결해놓고 녹음실장 역할과 성우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거다.
“심규혁 성우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실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 부분을 좀 읽어주세요.”
“아, 네. 어떤 톤으로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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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마다 방송국 앞에 있는 농협에서 14만 원씩을 찾아서 일주일을 살던 시기였다. 한 끼를 8,000원으로 계산을 하고 아침은 보통 거르니까 점심, 저녁 두 차례의 식비 16,000원에 커피값 4,000원, 그렇게 하루 2만 원에 7을 곱한 금액.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1만 원짜리 지폐 아홉 장을 뽑아 7일을 보냈다. 어쩌다 선배가 밥을 사주거나 바빠서 밥을 거르면, 그리고 커피가 잘 참아지면, 토요일에 지폐가 꽤 많이 남기도 했다. 그럴 때는 여자 친구와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을 수 있었다. 데이트는 거의 카페에서. 한번 자리에 앉으면 거기서 겨울잠을 잘 기세로 붙박였다. 그렇게 마주 앉아서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썼다. 그렇다. 돈을 안 쓰려고 글을 썼다. 쓸 말이 없을 때에는 책을 읽고 거기에 표시한 부분이 쌓이면 옮겨 썼다. 옮겨 쓰는 게 지칠 때에는 다시 하고 싶은 말을 썼다. 카페에 죽칠 돈도 없을 때에는 도서관에 가서 똑같이 놀았다. 국립도서관, 시립도서관, 주민센터 도서관, 심지어 네이버 도서관까지 가리지 않았다. 일이 없는 날과 주말, 주일은 그렇게 채워졌다. 글이라 부르기 민망한 메모와 일기 등에 불과했지만 돈을 안 쓰는 데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나는 뭘 쓰고 있으면 풍족함을 느끼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런 생활이 고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손으로 무엇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나를 안정시킨다. 내가 펜으로 노트를 사각사각 긁으면, 노트는 보이지 않는 촉수를 뻗어 내 등을 긁어준다. 그래서 그런 하루하루가 답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면… 이제 이 페이지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쓰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하니까 다른 곳에서, 이를테면 블로그라든가 카페라든가 어느 다른 지면에서라도 나의 흔적을 남기게 될 테고,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해 달라는 이야기다. 또한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아빠가 되고 성우로 10년이나 넘게 살고도 아직 꿈을 끝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라고 독자분들께 직접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분명 반가울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한때 아기였던 사람들이니까. 끝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잘하고 있다.
* 이번 호를 끝으로 ‘글라디오’는 연재 종료됩니다. 이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심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