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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0 컬쳐

사소하게 연연하는 - 작고 버려진 것들의 사랑을 위하여〈Mr. 플랑크톤〉

2024.12.18

넷플릭스 시리즈 〈Mr. 플랑크톤〉 스틸 ©넷플릭스

글. 박현주

바다에 갔을 때 그 위에 떠 있는 푸르고 붉은 생물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생존 양식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플랑크톤은 19세기 말 독일의 생리학자 빅터 한센이 처음 붙인 용어로, 그리스어로 ‘방랑하는, 떠가는’이라는 의미의 plankt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는 “부유(浮遊)생물”이라고 배웠는데, 요새는 “떠살이 생물”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수면 위에 떠돌며 살아가는 생명체, 플랑크톤.

넷플릭스의 10부작 드라마 〈Mr. 플랑크톤〉의 내용은 이 제목 안에 응축되었다. 온갖 수상한 일을 다 맡아 해주지만 가족을 찾는 일만은 사절인 심부름 집의 남자 해조(우도환)는 왕자파의 보스 칠성의 결혼식에서 신부를 납치하는 일을 하던 도중, 눈앞이 아찔해진다. 병원에서 깨어난 해조는 머릿속 뇌혈관이 얽히고설킨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한편 해조의 옛 연인 조재미(이유미)는 종갓집 5대 독자인 어흥(오정세)과의 결혼을 앞두고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조기 폐경이라는 진단을 받고 충격을 받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오던 해조는 병원에서 울부짖는 재미의 뒷모습을 보고, 결혼식 날 재미를 찾아가 그녀를 납치한다.

폭력적으로 들리는 도입부이다. 이 드라마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고 적힌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2000년대 초반 멜로드라마 같은 설정이다. 2020년대의 시청자들이 넷플릭스를 중간에 꺼버린다고 해도 이해할 만하다. 해조와 재미가 떠도는 길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조용 작가의 전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보였던 방식대로 결핍과 트라우마를 동화적으로 구현한 태도에는 불편한 느낌도 든다. 가난과 질병이 환상적으로 그려질 때 생겨나는 거리감이 있다.

그럼에도 〈Mr. 플랑크톤〉을 쉽게 외면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이 우리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건드린다. 해조의 첫 이름은 채승혁, 아버지가 고환암으로 수술받기 전 미리 냉동한 정자에서 태어나 풍요롭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승혁이 자랐을 때, 그의 부모는 승혁이 병원의 실수로 바뀐 정자에서 태어난 아이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이 밝혀진 후 가족의 운명은 급변하고, 외로움에 떠돌던 승혁은 길로 나와 해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절망 외에 아무것도 주지 못한 친부가 자기에게 기형의 뇌혈관을 물려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해조는 정자 공여자를 찾아내려고 한다. 재미는 보육원에 버려진 날짜가 생일이 되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한 달에 한 번 멋대로 생일을 축하하는 여자이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장래 희망은 엄마가 되는 것이다. 해조는 재미의 그 꿈을 이뤄줄 수 없었기에 이별을 고한다. 이후 만난 흥은 종갓집 장손으로서 재미에게 대가족을 선물할 수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다정한 흥이라고 해도 엄마가 되고 싶은 재미의 미래를 만들어줄 수는 없었다.

버려진 이들끼리의 따뜻함을 그리는 드라마는 많았지만, 〈Mr. 플랑크톤〉은 사랑을 받는 쪽보다 주는 쪽에 초점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상징 중 하나는 신발이다. 유난히 발이 작은 재미, 흥은 전통 혼례식을 위해 재미의 발에 맞는 꽃신을 가져온다. 결혼식에서 납치된 재미는 처음에는 그 꽃신을 신지만, 여정의 도중에 해조는 그 꽃신을 던져버리고 부산 구제 시장에서 꽃이 새겨진 운동화를 사준다. 새것도 아니고 구제인데 왜 그렇게 애지중지하냐는 해조의 물음에 재미는 “몰라, 나는 옛날부터 길바닥에 있는 건 다 그렇게 짠해 보여.”라고 대답한다. 집 안에 있을 때는 귀한 물건들도 길바닥에 나와 있으면 다 불쌍해 보인다. 길바닥에 나오면 본래의 가치가 변하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는 재미. 그렇기 때문에 재미는 그런 버려진 신발이 더 사랑스럽다. 한번 버려진 거니까 더 아껴주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낡은 꽃신은 해조를 다시 재미에게로, 재미를 다시 해조에게로 이끌어준다.

넷플릭스 시리즈 〈Mr. 플랑크톤〉 스틸 ©넷플릭스

그러기에 더 멀리 떠날 수 있다

버려진다는 건 누구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지만, 버려진 것의 본연적 슬픔은 내가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데 있다. 본래의 가치가 떨어져버린 것들의 사랑은 하찮게 취급당한다. 하지만 해조와 재미를 포함, 이 드라마의 사람들은 결국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데 있음을 안다. 해조가 재미를 결혼식장에서 데려갔던 건 재미가 단순히 사랑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해조가 친부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던 동기, 그만둔 동기도 사랑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발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에는 은유와 상징이 가득하다. 인물들의 이름도 중의성을 띠도록 붙여졌다. 해조 밑에서 일하다가 왕자파에 붙들려 고초를 겪는 기호(김민석)는 “따까리” 역할을 한다고 “까리”라고 불리지만, 후에 기호가 보여주는 의리는 꽤 “까리”하다. 해조를 주워서 보살펴준 봉숙(이엘)은 말 그대로 해조의 뜻을 다 받아들여준 “봉”이었을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봉황 같은 여자이다. 봉숙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주리”인 것도 아낌없이 주는 따뜻한 성격을 뜻한다. 재미의 약혼자인 어흥은 재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흥이라고는 모르고 사는 남자였다.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이름으로 가졌지만, 종가를 호령하는 진짜 호랑이인 어머니 범호자(김해숙) 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 했다. 하지만 호부견자는 없다고, 결국 흥도 눈 속의 호랑이처럼 앞길을 헤쳐나가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주인공 두 사람의 이름은 장난처럼 불려도 가볍지 않다. 길 위를 떠돌던 승혁은 봉숙의 마작방에서 일하게 된 후, 모두에게 “이것 좀 해줘.”라는 말을 들으면서 지내다 결국 심부름 센터를 차린다. 그 과정에서 얻은 해조라는 이름은 플랑크톤처럼 바다 위에 떠다니는 해조(海藻)의 의미도 있다. 아무 데도 발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그의 운명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조재미라는 이름은 언뜻 들으면 망친다는 뜻인 “조짐”과 발음이 비슷하게 들리지만, 해조와 흥 모두 “재미있는 삶”을 원한다. 재미는 남을 즐겁게 하기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타인의 인생에 가치를 더한다.

이 드라마를 본 후에 플랑크톤에 대해 찾아보다가 교육부 공식 블로그에서 “작을수록 멀리 가는 플랑크톤”이라는 글을 읽었다. 바다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플랑크톤, 먹이사슬의 맨 아래 있어 하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랑크톤은 작고 힘이 없기에 더 멀리 가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Mr. 플랑크톤〉에서 긴 여행을 떠나는 해조와 재미가 생각나는 말이었다. 작고 버려진 것들,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았지만 그러기에 더 멀리 떠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작고 힘없기에 “떠살이”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할 대상을 찾을 수 있다.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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