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지
글. 김윤지
1. 올해의 스포츠 - 144일간의 도파민
작년까지만 해도 야구와는 거리가 멀던 지인들이 올해 들어 스멀스멀 야구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늘었음을 실감한다. 이는 수치상으로도 잘 드러난다. 코로나19로 인한 관중 입장 제한이 완전히 풀린 2023년부터 꿈틀대던 프로야구의 인기는 2024년 사상 첫 천만 관중을 달성하며 기록을 세웠다. 역대급 폭염을 기록했던 올여름, 시원한 극장가는 한산했지만 후끈한 야구장은 연일 매진이 이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야구장이야말로 도파민이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그야말로 ‘도파민의 스포츠’인 야구는 한 경기에 한 골도 터지지 않곤 하는 축구와 전혀 다르다. 안타, 홈런, 삼진. 경기 중 도파민이 터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수도 없이 많다. 9회 말 2아웃, 아웃 카운트 단 하나를 남겨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야구다. 게다가 다른 스포츠와 달리 1주일에 하루(월요일)를 뺀 6일 동안 경기를 치르고, 시즌 또한 6개월 이상 길게 지속된다. 1년에 최소 144일은 경기를 하니 일단 한번 빠지면 일상에서 떼어내기도 쉽지 않다. 1위 팀도 안심할 수 없고, 10위 팀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던 순위 싸움도 올 시즌 야구의 인기 요인 중 하나. 프로야구 중계권을 가진 티빙이 2차 저작물에 대한 제한을 푼 것도 신규 야구팬 유입에 큰 도움이 됐을 테다.
야구장은 경기 외적으로도 도파민 넘치는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제공한다. 야구장을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야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크림새우나 물회, 빙수 등의 먹거리를 즐기며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응원가를 목이 터져라 외치다 보면 학업·직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관중석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구장 밖에서는 남남이지만, 구장 내에서는 팀의 승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팬이니까.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분출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야구장은 도파민 그 자체다. 몇 달이 넘도록 쉬지 않고 이어지던 ‘주6일제 도파민’이 비시즌과 함께 사라진 지도 두어 달. 여전히 대체재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야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야구뿐이라는 말이 딱 맞을지도.
2. 올해의 프로 - ‘연프’의 진화, 어디까지?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은 연애 프로그램(이하 연프)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연프가 각 방송사마다 다른 형태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지겹다는 반응이 나올 만도 하건만 꾸준한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면 아직은 때가 먼 듯하다. 〈나는 솔로〉, 〈환승연애〉 등 각종 연애 예능의 화제성으로 개인 홍보가 목적인 출연자가 증가하고,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떨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포맷과 소재의 연프가 등장한다.
이별한 커플들이 한집에 모여 새 사랑을 찾고, ‘핫’한 남녀가 외딴섬에 모여 호감을 나눈다. 돌싱, 동성, 동창들의 연애까지, 이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다 다뤘다고 생각했건만, 이번엔 ‘남매’다. 가족인 걸 감춘 채 한집에서 살며 혈육의 ‘썸’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설정의 〈연애남매〉는 방영 전부터 많은 큰 화제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로 인한 도파민이 다 가시기도 전에 〈신들린 연애〉라는 새로운 도파민이 등장했다. 직업 공개 또한 연프의 묘미인데, 이번에는 출연자들의 직업을 점술가로 한정 지었다. 남의 연애운만 점쳐주던 용한 MZ 점술가들이 자신의 연애운을 점치기 시작한다.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 무당은 무구를 꺼내 신령님께 방법을 묻고, 타로 마스터는 타로를 꺼내 든다. 사주가 맞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할지 마음이 맞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잘하는 음식은 제사 음식.”이라는 범상치 않은 발언으로 화제가 된 〈신들린 연애〉는 기존의 연애 프로그램의 틀을 깨며 색다른 도파민을 선사했다. X, 동창, 남매, 점술가 그다음은 무엇일까.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도파민을 향한 시청자들의 열망에 따라 나날이 진화하는 연프. 그 끝은 어디일지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황소연
글. 황소연
1. 올해의 콘텐츠 - 밈으로 밈을 만드는, 밈 천국
유행하는 밈을 한데 모아 목록화한다 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스쳐 간 밈의 흐름은 관찰할 수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등의 시리즈와 아이돌의 라이브 방송, 유튜브 콘텐츠를 1차 콘텐츠라고 정의한다면, 그 속의 밈을 추출한 릴스, 쇼츠, SNS 게시글 등 파생 콘텐츠는 그보다 몇 배 더 많다. 특히 〈흑백요리사〉의 흥행은 1차 콘텐츠와 파생 콘텐츠가 서로 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세계관을 부풀리고 확장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백종원 심사위원을 온몸으로 묘사하는 ‘뚱종원’ 등의 캐릭터,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한 ‘흑백요리사들’까지, 넷플릭스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밈들은 대형 콘텐츠 기업들의 협업으로 보이기도 했다.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들의 리액션과 대사부터 한 명의 네티즌이 올린 온라인 게시글 역시 누군가에게 ‘꽂히면’ 밈이 될 수 있다. 아이돌 팬이나 구독자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소규모 단위의 밈이 만들어지고 사용된다는 점도 특별한 점이다. 밈을 전문적으로 정리해주는 SNS 계정, 뉴스레터와 함께 유튜버들이 결산해주는 ‘올해의 밈’ 콘텐츠도 이제 자연스럽다.
매일 새로 태어나 결합하고 소멸도 맞이하는 밈은 유행어와 콘텐츠의 무드, 표정과 눈짓 등 비언어적 요소까지 ‘표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키워드가 되었다. 온라인에 푹 빠져 있는 누리꾼이라면,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에서 마라탕후루를 먹으며 외모 체크를 해온 한 해를 돌아보며 조용한(?) 새해맞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완전 럭키비키다.
2. 올해의 디저트 - ‘요아정’ 토핑 아래에 숨은 먹거리들
한국인의 디저트라는 ‘볶음밥’의 왕좌를 위협할 음식이 등장했다. ‘요아정’으로 대표되는 배달 요거트아이스크림 전문점은 허기지고 당 떨어진 이들을 집합시켰다. 붐의 포인트가 된 건 하얀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오색찬란한 토핑이 얹어진 사진들이다. 시리얼은 물론이고 제철 과일, 시럽, 특히 황금빛 벌꿀집은 시선을 사로잡는 재료였다.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벌꿀집 재고 없음’을 알리는 가게들도 있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핫해지면서 더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게를 추천하거나 나만의 ‘맛잘알’ 토핑 레시피를 소개하는 이들도 많았다. 직접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방법이 공유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올해 들어 유난히 많았던 셀럽들의 유튜브 술방 콘텐츠까지 더하면, 유행하는 식생활을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엽떡’스러운 음식과 마라탕, 탕후루를 먹고, ‘아할점’에서 디저트를 고르고 아이스크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토핑을 투하하면서 우리는 도파민 음식의 정점을 맞이한 것 같다.
그 전성기와 반대되는 트렌드도 등장했다. 얼큰한 국물과 자르르 도는 기름까지 혈당 피크를 찍을 듯한 먹방의 행렬 가운데 등장한 개념 ‘저속노화’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도파민 먹거리 가운데서 꿋꿋이 렌틸콩을 비롯한 건강한 식재료와 생활 습관을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잔도 먹지 않는 것이 유일한 적정 음주’라는 정 교수의 조언은 단호하다. 느리게 늙기 위해 식단을 재구성한다면, 그 성취감에서 오는 도파민은 또 얼마나 상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