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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1 에세이

옆에서 - 형편없이 크기만 한 폭력에 맞서는 힘

2025.03.10

그날은 남편의 휴가가 끝나는 날이었다. 우리는 평소 그리 즐기지 않던 맥주 한 캔을 따서 나눠 마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넷플릭스에서 만든 소비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업무가 과중했던 데다 맥주 몇 모금이 더해지니 슬그머니 눈이 감기려던 찰나였다. 친구 소연에게서 카톡이 왔다. “헐, 지영아 뉴스 봤어?”

12월 3일 오후 10시 33분이었다. 무슨 뉴스지? 포털사이트로 들어가 각종 언론사를 확인했다. 뉴스를 읽으려는 찰나 내가 일하는 언론사 〈오마이뉴스〉 팀 단톡방을 비롯해 각종 단톡방에서 알람이 오기 시작했다.

소연은 다시 물었다. “어떡하지?”, “이게 뭔 일이지?”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이렇다 할 유의미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남편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다큐멘터리는 그대로 중단됐다. 밀물처럼 두려움이 몰려왔다. 몸을 아무리 떨어도 극심한 두려움을 가시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게 단톡방이 몇 분간 더 울렸다. 몇십 분이 지나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출근하라는 팀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국회 마당에 군 헬기가 착륙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듣고서 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남편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눈을 하고서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개 밤이는 평소라면 잠이 깊이 들었을 시간에 외출하는 나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차량이 많지 않은 도로를 택시는 차선을 바꿔가면서 거침없이 내달렸다. 기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택시가 서강대교에 들어서자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다 서강대교 중간쯤 가니 도로가 꽉 막힌 상태가 됐다. 서강대교 중간에서 시민 여럿이 차에서 내려 가드레일을 넘어가고 있었다. 망설일 새가 없었다. 가드레일을 넘어 서강대교 위로 내달렸다.

국회의사당 근처에 도착한 순간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라이브 방송을 켜고 국회 앞 상황을 중계하던 유튜브 방송 진행자들을 지나 국회 정문으로 달려갔다. 방송사 카메라를 비롯해 각종 장비가 곳곳에서 빛을 쏘아대 밤인데도 환했다. 군 헬기 세 대가 소음을 내면서 하늘을 가로질러 국회 쪽으로 향했다.

예정에 없이 시민들이 갑작스럽게 모였으니 정해진 구호도 마이크 같은 집회 물품도 있을 리가 없었다. 이날 1991년에 태어난 내 생애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구호를 들었다. 한 사람이 “계엄 철폐”를 선창했고, 뒤에 모인 이들이 “독재 타도”라는 외침으로 호응했다. 이전에도 이 구호를 외쳐본 적 있는 것처럼 어색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계엄 철폐”와 “독재 타도”라는 구호가 처음 외치는 것이 아니었을 이들 각자가 헤쳐온 인생을 상상했다. 나는 추위에, 혹은 분노가 어려 빨갛게 달아오른 시민들의 얼굴을 보았다. 무장한 군인에도, 경찰에도, 어쩌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한 시민이 국회 정문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저는 그냥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그가 외친 순간 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를 기다릴 가족을 떠올렸다. 그리고 국회로 오기 직전까지 택시 안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염려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대체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나

혼란스러운 새벽, 국회의원 190명이 비상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어도 시민들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끝이 나는 거라고 말하면서 좀처럼 국회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자는 시민 수천 명을 그로부터 3시간 30분간 추운 국회 앞에 세워두고는 비로소 계엄을 해제했다. 많은 이들이 6시간 넘도록 추위를 견디면서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국회대로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비상계엄이 선포된 당일 유서를 쓰고 국회로 출근했다는 이의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 들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 국회로 투입된 계엄군이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수천 발의 실탄을 챙겨 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나는 그제서야 그이의 판단이 맞았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그날 출근을 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나. 그간 책이나 사진, 영상으로만 보아왔던 5.18을, 한국사의 마지막 비상계엄의 시기를 떠올렸고 만에 하나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남편이 개를 잘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택시를 잡으면서 머릿속에서는 그 모든 가능성을 억눌러 잠재웠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라고.

그 국회의 밤으로부터 일주일 뒤, 5.18을 다룬 소설을 대표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이 문장은 ‘우리’를 “연결해주는 언어”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나 나는 자꾸만 그가 원래 말하려던 주제에서 이탈해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 어려운 일을 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적어도 이들 수천 명과, 아니 그 이후로도 거리로 나온 수백만 명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이를,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온” 이들을 매일매일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며칠 뒤에는 정기 상담을 위한 상담사를 찾았다. 이 모든 것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마치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음정을 맞추는 것처럼 길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지난 2주간 보고 들은 것을 ‘토해’냈다.

그러니까, 대체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제 와서는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심지어 (기득권이 아닐) 그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았던,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담사는 내 말을 들으면서 덧붙였다. “어떤… 아주 거대한 힘을 보고 온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미소 지었다. 나도 그녀의 말에 웃었다. “정말로요, 정말 그래요.” 형편없이 크기만 한 폭력에 맞서는 고유한 힘, 그리고 고유한 사랑을.


글.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함께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사람 하나, 개 하나랑 서울에서 살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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