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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1 에세이

오후의 시각 - 오늘 당장 극장에 가자

2025.03.07

지난 8월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최민식 배우의 발언이 이슈가 됐다. 지나가는 말로 영화표값이 너무 비싸다는 넋두리를 했는데 이게 인터넷상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며 관련 기사가 줄을 이었다. 특별한 말은 아니다. 최민식 배우가 해당 발언을 하기 전에도 ‘영화계 위기’, ‘극장 산업 위기’ 같은 기사에는 “티켓값이 비싸져서 극장을 안 간다.”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극장이 힙이다

최민식 배우의 발언은 영화계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공감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영화계에 닥친 위기를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한 것 아니냐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 인터뷰가 OTT에서 제작한 드라마 공개에 맞춰 홍보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었기에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잘나가는 OTT 드라마를 하면서 죽어가는 극장 영화를 비판한 셈이니까. 최민식 배우 입장에서는 인터뷰 중 가볍게 한 말에 어그로가 끌린 것이 억울하겠지만 유명세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지.

나 역시 이 주장(표값이 비싸서 극장이 망한다)에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최민식 배우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영화든 뭐든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것은 가격에 영향을 받는다. 2019년 1년간 국내 총극장 관객은 2억 2천만 명이 넘는다. 반면 2023년은 총관객이 1억 3천만 명밖에 안 된다. 러프하게 보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그 사이 영화표값은 주말 기준 1만 2천 원에서 1만 5천 원으로 25% 올랐다. 그러니까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 인과관계는 확실하다. 관객도 줄었고 가격도 올랐다.

그런데 한번 따져보자. 단순히 25%라고 하면 꽤 많이 오른 것 같지만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평균 물가상승률을 합치면 대략 그쯤 된다. 그러니까 물가 대비 영화표값이 이해 못 할 수준으로 비싸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지난 몇 년간의 높은 물가상승은 원자재값 상승에 기인한 것인데 극장이 원자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이라고 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가격 상승이 편의적인 측면이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설혹 영화표값이 비싸졌다고 하더라도 그게 영화 산업이 위축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아무리 비싸져도 볼 사람은 본다. 극장의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닌 세계적인 추세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 초반으로 한국보다 조금 낮지만 표값은 2만 원 정도로 한국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극장에 열광한다. 왜 그럴까? 사우디아라비아는 보수적인 종교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오랫동안 폐쇄적인 사회체제를 유지했다. 극장도 허용되지 않았다. 여자는 운전도 못 하는 사회인데 극장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사우디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2017년 새롭게 권력을 잡은 왕세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각종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그중 하나가 극장이다. 여성 운전도 허용됐다. 2019년부터 사우디 시민들은 드디어 공개적인 장소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할리우드 등 해외 영화도 포함된다. 이 상황을 상상해보라. 영화가 인기가 있겠는가, 없겠는가? 사우디에서 힙을 좀 안다 하는 이들은 극장에 간다. 당연히 관객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극장 수도 맞춰 늘어나고 있다. 극장이 해방구가 된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수한 사례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볼 만하면 본다는 것이다. 결국은 영화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킥’이 있는가가 문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세계적으로 OTT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이는 여가를 보내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화는 습관성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게임을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사람은 영화를 본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영화는 주춤하는데 OTT를 비롯한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극장은 경쟁력을 잃었다. 영화표값이 오른 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극장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니 극장 입장에서는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2019년과 2023년을 비교해보면 관객은 반이 줄었지만 수익은 3분의 1 정도만 줄었다. 그들을 비난하는 건 쉽지만, 그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극장의 몰락과 함께 영화의 영광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도 특정 작품이 잠깐 흥행할 수 있고,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단지 영화를 극장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서 보는 것으로 변한 것뿐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극장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영화의 정체성 그 자체다. 영화는 극장이라는 극도의 몰입된 환경에서 존재한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영상 매체보다 강력할 수 있었다. OTT는 시청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 영화와는 문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화를 평생 봐온 나조차도 OTT로는 소위 예술영화를 보기가 어렵다. 다 본다고 해도 감흥도 적다. 극장을 잃은 영화는 아우라가 없다. 실제로 대다수 10대들은 영화를 단편 드라마 정도로 이해한다고 한다. 몰입된 환경이 없다면 영화의 가장 큰 적은 OTT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10대와 20대들이 극장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 스마트폰 사용이 제한되는 것을 꼽기도 했다. 영화관 문화를 체득하지 않은 이들은 왜 영화에 그 정도로 특권을 주어야 하는지 동의하지 못한다. 극장을 잃으면서 영화는 오직 하나에서 개중 하나로 전락했다.

마치 영화가 멸망이라도 하듯이 비관적으로 말했는데, 당연하게도 영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마니아가 있고 시장 규모도 작지 않다. 문제는 그 방향성이다. 원래 가난했던 사람은 그 상태로 잘 살 수 있지만, 부유했다가 가난해지면 겉잡을 수 없다. 현재 영화 산업은 과거의 큰 규모에 맞춰져 있고 그에 맞춰 굴러간다. 그런데 산업의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상황이 나빠진다. 일단 전체 수익이 줄어들면서 몇몇 제작사가 쓰러지고, 살아남는 곳도 적자가 누적된다. 시장 전망이 어두우니 투자가 줄어들고 자연히 제작 편수도 줄어든다. 당연히 극장에 걸 영화가 없다. 코로나19 이후로 재개봉 영화가 줄을 잇는데 그 영화들이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땜빵을 하려는 목적도 있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관객이 줄고 망하고 투자금이 줄어들고 영화의 질이 떨어지고 다시 관객이 줄고….

앞에서 말했듯이 문화의 많은 부분은 습관인데, 이 습관에 균열이 가면 열 편 보는 것을 다섯 편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보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어렵게 투자받아 만들어진 영화도 제작비가 줄어들 것이고, 이는 영화의 완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영화사는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올리기 위해 되는 영화에 몰두하게 된다. 지난 10여 년간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영화판을 주도한 것도 영화계의 몰락을 보여주는 징조였을 수 있다. 영화관에 좋은 영화가 상영되지 않으면 충성 관객조차 빠져나간다. 충성 관객이 빠져나가면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뛰어드는 인재 역시 줄어든다. 관객이 줄고 망하고 투자금이 줄어들고 영화의 질이 떨어지고 다시 관객이 줄고….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바닥을 다질 때까지 이 악순환이 반복된다.

뉴스를 보다 보면 ‘연착륙’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경제, 부동산, 제조업 대상은 달라져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연착륙을 말한다. 그런데 이 연착륙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제대로 연착륙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나는 영화의 황금기에 성장했고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보고 영화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것의 몰락을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동시에 찬란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바로 여기서만 볼 수 있기에. 그러니 시간을 내서 극장에 가자. 지금 누릴 수 있는 예술을 즐기자. 지금처럼 영화를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곧 끝날지도 모르니까.


글.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일곱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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