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데자뷔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습니다. 그 계기는 우연처럼 비슷한 일들이 몇 년 주기로 반복된다는 온라인 유머로부터 시작됐는데, 실제로 모아놓고 보니 세상엔 반복되는 일들이 참 많더라고요. 같은 가수가 내한 공연을 하고, 같은 작가가 큰 상을 받고, 같은 스포츠 팀이 또다시 우승하고. 그렇다면 과연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반복이 찾아왔을까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볼 때도 유심히 지켜보게 돼요. 친구의 새로운 연애는 어떨까? 퇴사하고 어떤 시간을 보낼까? 낯선 여행지에 가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알 수 없는 미래를 떠올릴수록 현재를 소중히 여기기도 하고, 비슷한 일을 겪을 때마다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은 서울 중랑구에 사는 친구, 진수의 집에 가보았습니다.


다사다난한 연말연시였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 해온 헬스 트레이너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운동하고 글 쓰고, 책 읽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마음이 굉장히 편해요. 일을 쉬면서도 마음이 편한 걸 보면 돈을 버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하고 싶었던 일을 실컷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때로는 필요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요즘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요. 이 집을 소개해주세요.
우선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비록 작은 집이지만 혼자 지내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해요.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제게 집이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봤는데 의외로 좋은 점이 많았더라고요. 이 집에서 편하게 자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휴대전화도 사용하는 일상이 나름대로 좋은 추억이잖아요.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공간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집엔 취향이 묻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이 집과 진수의 추구미는 뭐예요?
제 추구미는 자유로움이에요. 그래서 집에 특별한 인테리어는 없어요. 보시다시피 물건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책인데요. 책의 제목이 잘 보이도록 느낌 가는 대로 쌓아뒀어요. 카페에 가도 정갈하게 꾸민 것보다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는, 어질러놓은 듯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나름의 규칙과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사진으로 예를 들면요?
너무 밝은 이미지보다는 비 오는 농구장처럼 조금은 우중충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진에 사람이 있어야 예쁘게 보이더라고요. 사람과 자연이 섞여 있는 이미지를 좋아해서 취미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예요.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아무리 쓰레기라고 해도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 마법처럼 예뻐 보인다는 거예요.
향수나 엽서같이 몇몇 물건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게 보여요.
친구들이 써준 편지 중에서 아끼는 편지는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끔 봐요. 진심이 담긴 말을 예쁜 글씨로 보는 게 좋아요. 정형화된 폰트가 아닌 개성 있는 글자로 꾹꾹 눌러서 써줬다는 게 특별하게 다가와요. 저도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손 편지를 쓰는데, 같은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고맙게 느껴져요.
편지를 살짝 읽어보니 우정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진수의 가장 큰 감정은 뭐예요?
제 안에 있는 가장 큰 감정은 우울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는 그 우울함에 잠식되어버렸다면, 지금은 그 우울함과 같이 잘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도 삶과 우울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거나, 아니면 가끔은 우울을 이기는 삶을 꿈꾸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안에 우울함이 많지만 동시에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감정과 공존을 선택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럼, 사랑을 느낄 때는 언제예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보이지 않는 벽이 쳐지잖아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벽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그 벽이 허물어져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굉장히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상태가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제게 사랑이란 곧 ‘편안함’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최근에 가장 편안함을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얼마 전에 뉴욕에 다녀왔어요.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고 그곳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출신 지역과 인종과 나이, 언어도 다양하니까 사람들이 저에 대해 신경을 하나도 안 쓰는 거예요. 제가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 다니거나, 한국말로 혼자 중얼거려도 무신경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그것이 결국에는 아무도 나를 판단하지는 않는다는 뜻 같아서 굉장히 마음이 편안했어요.
맞아요. 여행이 주는 위로가 있죠. 생각해보니 집도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머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잖아요. 진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마침 어제 한 북토크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작가분이 생각하는 집은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나 반려동물처럼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진짜 나로 만들어주는 것과 동일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어요. 그 말에 공감이 되어서 내가 꿈꾸는 집을 주제로 글을 한 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진수의 집을 찾는다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궁금해요.
현실적으로는 부엌과 방이 분리되어 있는 집을 원해요. 요리도 마음껏 하고, 긴 테이블을 거실 가운데 놓고, 그 자리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까운 곳에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나 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집 근처엔 방앗간처럼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단골 카페를 하나쯤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계속 내가 나일 수 있는 집을 찾아야겠죠. 실패하더라도 결국 나의 집은 나오게 될 거라고 믿어요.
글. 정규환
에디터. 도시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진행하며, 웹진 & 프로젝트 〈kyuhwan.kr〉을 운영 중이다. @Kh.inspiration
사진. 김강민
평일에는 옷을 만들고 주말에는 사진을 찍는다. @itskan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