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도 감사하다는 생각은 가끔 했다. 종교는 없지만 신앙인들의 ‘감사일기’에 어느 정도 공감도 하면서 살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것(무증상이었을 수 있지만), 글쓰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자주 깨지긴 하지만), 생리가 빨리 끝난 것(주기가 갑자기 앞당겨질 때가 있지만), 배달 음식을 번개같이 받은 것(지출이 잦아지지만) 등에 감사했다. 그냥 그 상황에 내가 놓였다는 게 고마웠다. 좀 더 ‘만사에 감사’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배려를 베풀고, 배려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해서 또 배려를…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기 힘든 건 알고 있다. 그래서 감사에 무덤덤해진 채 살다 보니 어느새 2025년이다.
벌써 작년이 된 2024년 12월 3일 10시 25분, 계엄령이 포고되자 카카오톡과 SNS는 안부를 묻고 상황 파악을 하는 연락과 게시 글로 난리가 났다. 국가적 위기였으니 그에 따른 혼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계엄령이 해제되고 해가 뜰 때까지 뉴스특보를 봤다. 요즘도 뉴스와 각종 정치·시사 콘텐츠, 팟캐스트를 매일 챙기는데,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듯하다.

연말이 ‘순삭’된 2025년의 시작 앞에, 새해는 하루하루 기를 쓰고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나는 믿지도 않는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을 찾았고 앞으로 착하게 살 거라는 다짐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어이없고 웃기는 행동이다. 근데 그냥 그렇게 됐다. 모든 것을 너무 흔하고 편하게만 여긴 것 같아서 죄스러웠다. 연말연시를 특별하게 맞이하는 것을 지양하는 편인데도 2025년의 시작엔 작은 비장함이 있다.
감사일기는 아니더라도, 올해는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하고자 한다. 감사함을 매일매일 쌓는 삶을 살고 싶다. 제시간에 오는 지하철이나 SNS 속 각종 밈에 낄낄거리는 것, 또 잡지를 만드는 일과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는 것도. 특히 12월 3일 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 이후 여의도와 광화문을 빈틈없이 채워 내 옆을 스쳐 갔을 생면부지인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떠올리지 않고 지금을 지나기는 무리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글. 황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