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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4 에세이

지역을 넘어, 사람을 잇다 (2)

2023.08.02

이 글은 '지역을 넘어, 사람을 잇다 (1)'에서 이어집니다.

ⓒ 잇다 내부 전경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큐레이션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지난 4월부터 오는 8월 20일까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가 열린다. 2019년 <데이비드 호크니>展의 엄청난 흥행을 지켜보며 꽤 많은 사람이 예상 혹은 기대한 일이 실현된 셈인데,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다는 평도 있지만 직접 가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 호퍼를 워낙 좋아해서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를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서 감상하고 다시금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지만, 사실 전설이 된 이들의 대형 순회전이나 오리지널 명화 전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직 살아 있는, 그러니까 ‘동시대 작가’와 만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시카고의 또 다른 중요한 미술관인 시카고 현대미술관(MCA)에서 30년 회고전이 열고 있는 게리 시몬스의 ‘아티스트 토크’ 행사에 가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일은 평생 기억할 귀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같은 이유로 지난달 오픈해 10월 22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연구 조사 전시로 열리고 있는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에서 ‘아티스트 토크’ 소식이 공지되면 꼭 신청해 참석해보기 바란다. 단종 등 역사적 인물들, 서울을 비롯한 현대 도시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온 서용선은 특유의 화풍인 굵은 선만큼이나 한국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원로 작가다. 필자가 평론가라는 직함을 처음 갖게 된 15년 전 양평 작업실에서 무심한 듯 털털하게 뉴욕에서 작업해온 이야기를 해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역력하다.

ⓒ 잇다 메뉴

대구에 있던 스페이스K가 2020년 마곡동으로 이전하고, 2016년 이후로는 파리의 페로탱, 뉴욕의 페이스와 리만 머핀 등이 진출하며 서울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컬렉팅과 작가 양성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는 아트 신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몇몇 대형 전시나 명품 거리의 갤러리만 볼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신선한 큐레이션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엔데믹 선언 이후 다시 살아나고 있는 연남동에 들어선, 참신한 큐레이션이 다이닝과 함께하는 공간 ‘잇다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하다. 이름이 ‘프로젝트’라는 것부터 특이한 이 ‘갤러리 레스토랑’은 이미 주거·건축·상업·문화 공간으로 주목받은 ‘어쩌다집 연남’ 1층에 위치해 있다. 2019년에 문을 열어 ‘삶 디자이너’ 박활민의 <요즘 산 그리고 있습니다>를 중심으로 한 첫 프로젝트 ‘Dear Mountain’을 선보이며 아티스트 토크, 커피, 와인, 아로마 테라피 등을 통해 ‘고독’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Dear Alice’, ‘Dear Me’, ‘Dear Green’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델로스, 한차연, 김선순 작가를 3개월 주기로 소개해왔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가장 극심했던 2020년 가을, 이철민 작가의 전시 때부터 6개월 단위로 전환했다.

ⓒ 잇다 메뉴

‘잇다 프로젝트’를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계절별로 바뀌며 좋은 재료와 창의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다이닝까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편집 디자이너 출신의 신은경 대표가 직접 설명해주는 음식과 프로젝트 소개를 들으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연남동에서 보낸 한 시간이 우리를 더욱 적당한 거리와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잇고 있음’을 실감한다. 결코 전형적이지 않고 서두르는 법도 없는, 그래서 다음이 또 기대되는 이곳에 가는 마음은 마치 못해도 계절에 한 번은 현대미술관을 찾는 마음과 비슷하다. 필자는 채병록 작가의 포스터 디자인 전시인 <길상만첩>에서 하나 남은 에디션을 구입해 지인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책가도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까다로워 실제로 산 적은 없다던 친구는 채병록의 작업을 만나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술이 대중의 문턱을 넘어 일상과 이어지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를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이파라파냐무냐무> 또한 겉으론 커다란 털북숭이로 무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지은 작가가 그리는 세상은 오해와 편견 너머의 ‘화해’다.” 현재 ‘숲의 전설’이라는 타이틀로 전시 중인 이지은 작가의 주제 의식이 마음에 쏙 든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더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면에 드러난 갈등 때문이기보다는 그 이전에 스스로 가진 망설임, 즉 내적 갈등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극복했을 때, 지리적 혹은 문화적 환경, 그러니까 넓고 좁음, 사람의 많고 적음, 멀고 가까움 같은 이분법적 차이도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닐까. 서울과 지역 그리고 예술에 대한 개인적 접근성의 격차도 그렇게 희미해져가기 바란다.

소개

배민영
아트 저널리스트이자 누벨바그 아트에이전시 대표. 기획과 평론을 한다.


글 | 사진제공. 배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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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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