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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5 인터뷰

식탁에 마주 앉아 ―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 인터뷰 (1)

2022.10.24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국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면 이 성분은 혈액이나 수분처럼 객관화하기 힘들 것 같고, 더불어 사는 데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딸의 남편이 될 아라이 카오루를 위해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는 정성껏 닭 수프(백숙)를 끓인다. 함께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가족이 되어가는 세 사람을, 제주 4·3사건을 비롯한 질곡의 근현대사가 잇는다.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통해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활동을 한 부모님과 북한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의 삶을 조명해왔다. 그 연장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역사와 가족, 인간관계를 말한다. 도쿄로 돌아가기 전날이면 엄마와 돈 문제로 다투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건 부모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양 감독은 “내가 어떤 사람의 자식인지 알아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


ⓒ ㈜엣나인필름

<수프와 이데올로기> 영화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영화제도 개봉도 늘 시험을 보는 듯한 긴장감이 있어요. 영화제는 평소에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 오시는 자리인데 개봉은 또 다르죠. 특히 다큐멘터리를 보게 하기 위해 어떻게 관객들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싶어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제가 이제까지 만든 다른 영화보다 음악도 많고, 여러 이슈가 섞여 있어요. 4·3사건이나 재일교포에 대해 잘 몰라도 모녀 관계, 치매와 돌봄 등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가 많아서 관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많은 영화예요.

영화 제목이 눈길을 끕니다. 문장 안에서 쉽게 보기 힘든 단어들인데요.
일단 ‘수프’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어요. 수프는 음식을 뜻하는데, 뭔가를 먹는다는 건 같이 살아간다는 뜻임을 담고 싶었거든요. 어느 나라에서든 억지로 번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리지널 타이틀을 쓸 수 있는 단어가 ‘국물’이나 ‘탕’보다는 ‘수프’인 것 같아서 이렇게 정해졌어요.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은 남편분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아주 신기한 사람입니다.(웃음)

ⓒ ㈜엣나인필름

영화에서 남편분은 어머니와 감독님 사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존재인데요.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시켜야겠다고 결정하신 이유와 남편분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남편은 원래 사진 찍히는 것을 아주 싫어했어요. 예를 들어 회식을 하면 스마트폰으로 함께 셀카를 찍고 SNS에도 올리잖아요. 저희 남편은 열심히 음식 사진만 찍어요. ‘이 정도면 영화는 못 하겠네.’ 싶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우리 엄마를 꼭 만나겠다는 거예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는 그 ‘미친’ 재일교포 집에 누가 가겠어요. 전 ‘재밌겠다. 코미디가 담긴 하루를 찍을 수 있겠다.’ 생각했죠. 남편에게 촬영 허락을 받으려는데, 처음엔 “나를 찍어?”라고 했어요.(웃음) 뒷모습만 보이도록 찍겠다고 했는데, 얼굴이 안 나오면 재미없지 않겠냐고 했어요. 평소와의 차이가 재밌었죠. 게다가 남편이 어머니를 만난 첫날 좋은 그림이 찍혔어요. 남편이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은 마치 외교관 같았어요. 사이가 나빠질 수 있는 이슈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어머니가 “우리 아들, 손주들 잘 있어요. 북한에서 행복해요.”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웃으면서 듣고요. 이 사람이 새로운 가족이 된다면 장편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스틸

아버지의 생전, 어머니께선 감독님께 아버지와 달에 번이라도 밥을 먹어 달라.” 권유하셨죠? 습관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어땠나요?
20대 후반까진 아빠와 밥을 안 먹었어요. 뉴스에서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라도 나오면 아버지는 “대단하지”라고 하고…. 전 ‘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나? 연습이 끝나면 집에 가서 목욕을 할 수 있나?’ 그런 걱정을 했어요. 집단주의를 아주 싫어하니까요. 아빠와 많이 싸웠고요. 서른 살 때 촬영을 시작했는데 아빠와 밥을 먹게 된 후, 가족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갑자기 웃으면서 아빠에게 말을 거니까, 처음에는 “야, 너 무슨 지랄이야!” 하셨는데,(웃음) 그래도 늘 싸우기만 했던 딸이 옛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니 아버지로선 역시 기쁜 거죠. 무너진 관계를 재구축하는 데 식사와 카메라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영화에서 모녀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등장해요. 감독님께서 어머니를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 못지않게 문제로 다투는 모습도 인상적인데요.
“우리 집도 그래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을 거예요. 내가 돈벌이가 안 되는 영화만 해서 그런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어요. 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입원하신 후부터 전 엄마께 돈을 정말 많이 드렸어요. 그 돈은 모두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졌고요. 어머니께서 북한에 가는 여행 경비뿐 아니라 북한의 가족, 친척들에게 현금을 조금씩만 드려도 지출이 커요. 나는 ATM이 아니라고 싸운 적도 있고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식으로 살아왔어요. 그렇게 싸우고 나면 미안하니 도쿄에 돌아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을 보내고,(웃음) 되풀이죠. 어머니와 다투면서도 4·3사건에 대한 증언을 하시면 제가 그걸 기록해왔어요. 남편이 그런 어머니와 저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해줬어요.

ⓒ ㈜엣나인필름

어머니와 남편분이 같이 마늘을 까고 요리해 식사하는 평범함이 눈에 들어왔어요. 일상적인 광경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나요?
가족은 처음부터 가족이 아니라는 거요. 당연히 가족이 아니라, 그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제나 부부도 마찬가지에요.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상대방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죠. 저희 부부가 올해로 같이 산 지 6년인데, 사이가 좋은 이유가 아주 바보 같은 이야기를 매일 해서인 것 같아요. ‘커피가 맛있다’ ‘비 오네’, 그런 회화를 웃으면서 할 수 있다면, 나이 들면서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삼계탕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와 남편이 함께 마늘을 까는 장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예요. 그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하게 흘러가잖아요. “매일 글을 쓰면 힘들지 않나요?” “허리가 아픕니다.” 이런 이야기의 축적이 가족을 만든다고 봤어요. 어머니에게 백숙을 해드리려고 남편이 도쿄에서 몇 번이나 연습을 했어요. 어머니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북한에 대한 책을 읽는다든지 그런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것임을 배웠어요.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제외된 장면이 있는데요, 어머니가 늘 앉아 계시는 의자에서 조는 장면이에요. 그때 남편이 의자 옆 바닥에 앉아 같이 졸고 있더라고요. 정말 감동했어요.

이 글은 '식탁에 마주 앉아 ―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 인터뷰 (2)'로 이어집니다.


글. 황소연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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