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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컬쳐

사라지는 풍경, 던져야 할 질문들 (1)

2022.12.14


아현동 662번지 일대

서울의 사라지는 풍경을 담기 시작한 건 지극히 개인적이고 복합적인 상황에 의해서였다. “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사람들은 매번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매번 머뭇거렸다. 앞서 설명했듯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최근 들어 그 ‘이유’라는 것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그저 복잡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어서 그 맥락을 나름대로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의 시작점이 되어준 아현동 재개발 기록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서 나름의 변화를 주고자 시도한 것이 점심시간의 산책이었다. 밥을 최대한 빨리 먹고,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길에 마주한 곳은 다름 아닌 재개발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이주한 상태였고, 몇몇 사람들이 남아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었다. 일부 건물은 철거되었고, 일부는 남았다. 이 자체만으로도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관련 업계(건설, 건축, 도시) 전문가 혹은 실무자, 재개발 구역에 거주하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일부러 찾지 않고서야, 살면서 이런 장소를 경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빈집 가득한 이곳.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다소 긴장되었지만,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빈집 가득한 동네를 걸었다. 아직도 누군가 사는 것처럼 물건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지만, 완벽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벽 한쪽에 걸린 액자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사람이 사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천이 뒤덮인 모래사장이 보였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는데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과 1년 전 골목 탐방을 하겠다며 찾았던 동네였다. 방금 본 모래사장은 동네가 철거된 이후 정리된 모습이었다.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이 1년 전만 해도 온전한 동네였던 곳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현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봤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그만큼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과 함께 흐르는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걷는 동안 봤던 풍경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구체적 계획 없이 가능한, 되는 대로, 많이, 자주 와서 할 수 있는 한에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일을 시도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기록이 진행되다 중단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제지로 아예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게 한 달, 3개월, 6개월, 1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사이 아현동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사계절이 흘렀고, 오랜 기간 이주하지 않고 대항하며 남아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강아지와 산책하던 아저씨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 배달 오토바이도, 인근에 있던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현동 662번지 재건축 현장에는 나와 영역을 지키는 고양이들만 남았다.

어느 날은 무거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허무했고 혼란스러웠다. 갈 곳 잃은 생 앞에서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가 정말로 의미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진짜 중요한 건 이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되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닌 누군가의 삶이 지켜져야 할 장소에서 ‘어떻게든 남겨야 한다.’며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맞는지, 무거운 죄책감도 들었다. 내 일은 아니지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더 이상 발길이 옮겨지지 않아 기록을 멈추었다. 철거 공사도 한동안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공사는 재개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다시 물었다. 결론은 처음과 같았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도록, 온전히 다 사라지기 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뭐라도 남길 것 말이다.

"진실이 어렵다고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에서.

이 글은 '사라지는 풍경, 던져야 할 질문들 (2)'로 이어집니다.


글 | 사진. 이경민
SNS ‘서울수집’ 계정 운영자 & 도시답사 및 기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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