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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의 서사, 〈정년이〉 ― 서이레&나몬 작가 (2)

2023.01.05


이 글은 '불가항력의 서사, 〈정년이〉 ― 서이레&나몬 작가 (1)'에서 이어집니다.

ⓒ 이미지제공. 나몬

실존 인물에게 받은 인상과 독자들이 언급하는 인물들의 매력이 겹치기도 했나요? 분이 생각하는 임춘앵 선생의 강인한 성정을 독자들이 단번에 파악했다든지요.
이레 실제 여성 국극 배우의 면면을 캐릭터에 조금씩 반영했는데, 저희가 생각한 이미지와 매력을 바로 알아채는 독자들이 많았어요.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 분명 있었던 거죠. 그런데 (국극에 관심 있는) 나를 왜 여태껏 혼자 뒀지?(웃음) 이런 생각도 들고, 재미있었어요.
나몬 인물을 형상화할 때 실제 인물을 많이 떠올리진 않았어요. 남아 있는 여성 국극 배우들의 사진은 워낙 분장이 강렬한 경우가 많아서요. 지나치게 오마주하듯 그리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여성 국극처럼 널리 알리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레 쇼트트랙이나 컬링을 소재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이미 잘 알려진 장르인 것 같아요. 그런데 여성 국극은 ‘나 말고 아무도 안 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었죠. 제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 거기서 소재를 가져오는 것도 괜찮을 듯해요. 아버지가 얼마 전 마을 이장이 되셨는데,(웃음) 이장 선거 등 농촌에서 생기는 일을 다루면 재밌을 것 같아요.

ⓒ 이미지제공. 나몬

<정년이>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나 사진 사료 등을 참고하셨다고 들었어요. 역사적 요소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요?
나몬 최근 웹툰의 배경을 쓸 수 있는 요소를 3D화해 판매하는데, 연재를 시작하던 무렵에 1950년대의 것은 찾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배경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큰 고민이었죠. 연재 중 과거 이미지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현대의 이미지와 혼합해 작업했어요.
이레 정치·역사적인 부분을 많이 떼어놓고 스토리를 짰어요. 여성 국극단 에피소드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당시 역사적 사건이 많잖아요. 4·19혁명도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고요. 연재가 끝나고 나니 그런 배경을 너무 외면한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은 들어요.

등장인물들이 연습하는 장면, 무대에 서는 장면 등에서 같은 가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지점에서 부담은 없었나요?
이레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요. 인물들이 연습, 오디션, 공연에서 같은 장면을 많이 연기하게 될 텐데 어떤 차이를 둬야 할까, 어떻게 해야 덜 지루하고 새롭게 느껴질까 하는 고민이요. 대사와 지문을 쓴 후 연습 때 들어갈 부분과 무대 공연에 쓸 만한 부분을 각각 정해 작업했어요. 연습에서 나온 대사는 무대 공연 장면에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중요한 부분 위주로 짜되, 인물들이 연기하면서 하는 생각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어요. 연습할 때에는 특유의 날것 느낌이 들도록 완성도를 일부러 낮춰 풀어놨고요.
나몬 그 대표적인 시퀀스가 결말 즈음의 <쌍탑전설>인데요. 정년이와 영서가 거의 같은 구절을 소화하기 때문에 이건 다르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출을 아예 다르게 구성했고요. 둘 다 엄청난 연기를 펼치는 장면이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 끝에 그렸어요.

ⓒ 이미지제공. 나몬

연재 종료 후에도 곱씹게 되는 <정년이> 대사나 장면이 있나요?
나몬 작품 후반부에 영서와 주란의 대사가 생각나요. 서로에게 가까운 것을 사랑하기에도 바쁜데,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거든요. 그 대화가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이레 작품을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 쓰면서 재밌었던 장면은 가끔 생각나요. 여성 국극단이 쇠퇴의 길에 접어들 무렵 정년과 영서가 대화하는 장면이에요. “이렇게까지 사랑하는데 왜 끝이 있는 걸까?”라는 대사가 있는데, 정년이랑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런 의문이 들잖아요. ‘나는 아직 끝이 아닌데,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끝이지?’ 싶은 때요.

이레 님은 작품 후기에서 여성 국극은 사랑 없이는 설명할 없는 세계라고 하셨어요. 그것과 함께 언급해야 하는 점이 해방감인 듯해요. 분은 작품을 통해 어떤 해방감을 느끼셨나요?
이레 작품 말미에 정년과 부용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통쾌했어요. 이와 더불어 <정년이>를 통해 많은 분이 여성 국극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첫 번째 목표도 달성했고요.
나몬 연재하면서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걸 돌아보게 됐어요. 여성이 남성을 연기하는 지점에서 저는 스스로 여성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더라고요. 남성을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삶이 완성되는 여성의 삶이 어떤 건지,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본 것 같아요. 깊은 몰입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는 경지, 그리고 몰입을 통해 더 큰 자유를 느끼는 경험에 대해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여자아이들을 <정년이>를 통해 그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정년이> 정주행한 팬들에게 한마디해주세요.
이레 제가 작품 반응을 잘 안 보는 편인데도 연재하는 데 힘을 얻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댓글 응원이었어요. 이야기를 봐주셔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갈 힘을 주셔서 깊이 감사해요.
나몬 전 웹툰 작업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많은 사람이 <정년이>를 보는 경험 자체가 신선했어요. 두렵기도 했지만요. 긴 이야기를 끝까지 보는 일이 쉽지 않잖아요. 독자들이 제가 일주일 내내 붙잡고 있던 작업물에서,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해주실 때도 있어요. 제가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해주실 때 무척 놀라웠어요. <정년이>는 정말 감사하고 특별한 경험입니다.


글. 황소연
이미지제공. 나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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