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상경해 매란국극단에서 좌충우돌 성장해가는 정년. ‘고 사장’의 말대로 거대한 국극 무대인 세상에서 정년은 여러 대본과 배역, 사람들을 만난다. 연구생에서 배우로, 예술가로 거듭나는 정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으레 그렇듯 몇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다. 수많은 연습과 무대로 연결된 에피소드 중 국극 배우 정년을 성장시킨 <정년이>의 결정적 순간을 사심을 담아 꼽았다.'
ⓒ 이미지제공. 나몬
남자 됨과 여자 됨은 가소로워
어렵게 매란국극단에 들어왔지만, 정년은 연구생 첫 무대로 <춘향전>의 ‘방자’를 연기해야 한다. 첫 스테이지에서 ‘보스몹’을 만난 것과 다름없다. 캐릭터 구축에 어려움을 겪던 중 만나는 인물이 ‘파스텔다방’의 단골손님 고 사장이다. “나는 인형도 고양이도 아니잖어라!” 위기 상황에서 고 사장에게 도움을 얻은 정년은 남장한 여성인 그에게 연기를 배우려 한다. 여자는 인형도 고양이도 아니지만, 고 사장이 본 남자들은 언제나 여자를 그렇게 대했다. 정년에게 남자 연기를 보여주는 고 사장. 정년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을 단체 연습을 하는 대신 일하는 다방의 남자 손님을 관찰하는 데 쓰고, 자신만의 방자로 모두를 사로잡는다. 이 에피소드는 여성 국극 배우가 원전 캐릭터의 대사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걸음, 손짓, 눈빛, 표정을 창조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다는 점을 오늘날의 웹툰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한다.
ⓒ 이미지제공. 나몬
아무래두 나는 국극 하러 가야것소!
정년이 매란국극단에 온 목적은 돈을 가마니로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구생 신분으로는 아직 들어갈 돈이 더 많다. 분장에 필요한 붓이나 가제 수건 같은 것까지 사야 하니 말이다. 단원들에게 지급되는 야참비로는 부족해 다방에서 일하던 중, 정년은 우연한 기회에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된다. 극단이 아닌 곳에서 노래하다가 들켜 크게 질책을 당한 정년은 홧김에, 그리고 떼돈을 벌 기대에 극단을 뛰쳐나가 방송국으로 향한다. 하늘을 울린 소리꾼으로 알려진 ‘채공선’의 딸이라는 사실이 방송국 측에서 판단한 정년의 ‘스타성’이다. 한마디로 채공선이 없으면 정년을 캐스팅할 이유가 없었던 것.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 답답하던 정년은 국극이 자신의 자리임을 깨닫고, TV로 송출될 가요 한 곡을 부르며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두 나는 국극 하러 가야것소!
ⓒ 이미지제공. 나몬
성당에서 본 공연이 파장을 일으키다
매란국극단 모두가 정기 공연작 <자명고>를 준비한다. 무단이탈한 벌로 오디션 날까지 설거지를 해야 했던 정년은 ‘군졸 1’ 역할을 맡는다. 대사는 딱 한 줄인데, 정년은 그 대사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선배의 조언으로 참전 용사를 위한 행사가 열리는 성당에 간 정년은 사람들의 즉석 공연을 보게 된다. ‘적벽가’ 중 군사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서러움과 한스러움을 말하는 ‘군사 설움’ 대목이다. 작은 공연의 주인공들은 모두 군인으로 복무했던 여성이다. 전쟁 중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고 연기해야 하는 정년에게 참전한 소위가 이렇게 말한다. “맞아. 전쟁에선 사람이 죽어. 전쟁은 전혀 멋진 것이 아니다. 괴롭고 무섭지.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돼.” <자명고>가 어떤 세계인지 파악한 정년은 무대에서 단원과 관객 모두를 놀라게 하는데, 이 연기는 곧 큰 파장을 불러온다.
ⓒ 이미지제공. 나몬
넌 내 하늘이고 전부야
권부용은 <정년이> 서사의 시작과 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소리는 내 바닥이고 내 하늘이야. 내 전부야.” 정년이 이렇게 진심을 터놓는 존재이고,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정년은 부용이 활동하는 합창단원에게 ‘잘 들어야 잘 부를 수 있다’는 조언을 들은 뒤 주연배우 대신 ‘촛대’를 연기할 생각을 하게 되고, 국극 배우가 홀로 빛나는 스타를 지향하기 이전에 모든 연기와 대사를 숙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진정한 매란국극단 단원으로 성장해가는 데 부용의 역할이 지대하다. 137화로 작품이 완결될 때까지 섬세하게 표현되는 두 사람의 애정, 부용 가족의 이야기에 담긴 <정년이>의 주제는 꼭 확인해야 할 포인트.
글. 황소연
이미지제공. 나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