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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8 에세이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

2023.10.05

ⓒ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표지

현재 나는 세 개의 북 클럽에 끼어 있다. 하나는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고전 희곡을 낭독하는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한 달에 한 번 추리소설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또 하나는 친구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문학 이론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셋 다 온라인으로 모이는데 모임원의 사정에 따라서 간혹 쉬기도 하지만, 대체로 몇 년 이상 지속 중이다.

‘북 클럽을 세 개나 참여하다니 어지간한 독서 중독자인가 보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나는 읽은 책에 대해 누군가와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북 클럽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 북 클럽에 열심이라는 역설이 성립할 것이다. 명색이 글을 쓰고 읽는 직업인데, 어느 시점부터 독서량이 터무니없이 줄었다. 눈은 침침하고, 집중력은 떨어지고, 봐야 하는 드라마도 많다. 그러기에 모임이라는 약속에 매여서라도 책을 읽자는 마음으로 모임을 이어간다.

최근 단행본 2권이 출간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창현 글, 유희 그림, 사계절 펴냄)에 나오는 독서 중독자들은 나와 다르다. 그들은 순수하게 책을 사랑하며,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에 익명으로 모여 책 자체에 관해 토론한다. 지적 인문주의와 대조되는 B급 개그 감성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이 만화는 철학자 강유원의 책 <책과 세계>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독서 인구는 45.6%이고, 1인당 평균 독서량은 1년에 7.0권이다. 즉 교과서나 참고서를 제외하고 1년 중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전체 조사 대상의 54.4%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이 “정상이 아닌 탈이 난 상태”일 수밖에.

그 때문인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 등장하는 사람 중에 언뜻 봐도 평범한 사람은 없다. 1권의 시작, 자기 계발서를 선호하는 ‘노마드’와 언더커버로 범죄 조직에 침투 중이며 그리스비극과 셰익스피어 문학을 좋아하는 ‘경찰’이 북 클럽에 찾아온다. 비교적 평범한 사회인처럼 보이는 노마드는 바로 쫓겨나고, 수상한 점이 있는 경찰은 그보다 더 수상해 보이는 독서인들 사이에 끼게 된다. 아니, 예티인지 설인인지 하는 유인원도 북 클럽 회원이니 수상해 보이는 독서 영장류라고 해야겠다. 외모는 험악하지만 섬세한 솜씨로 아귀탕과 디저트를 만들어 파는 식당을 운영하는 ‘슈’, 친구가 없고 축구팀 FC 샬케 04를 응원하는 엄격한 독서 원리주의자 ‘사자’, 기이한 멀릿 헤어스타일(통칭 병지컷)을 하고 브릿팝 커버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고슬링’,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처럼 생겼지만 가장 이상해 보이는 진행자 선생이 주력 회원이다. 거기에 취업 준비생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로렌스’가 참여하면서 북 클럽은 종종 패러디 소설의 합평회로 변모한다. 2권에 들어가면 책을 좋아해서 사서가 되었지만 도서관 업무에 질려버린 ‘다크 섹시’가 가입하고 예티 대신 사스콰치 빅풋이 끼면서 북 클럽의 성별, 종적 다양성이 강화된다.

이 글은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책과 세계> 중에서


글. 박현주 | 이미지출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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